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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탄한 기본에 감성 더한 '영리한' 성악가... 이다미 소프라노를 만나다


[여성소비자신문 한고은 기자] 코로나 블루 시대, 가장 어렵지 않게 다친 영혼을 치유 받을 수 있는 매개체는 단연 음악이다. 최근 대중 가요계는 트로트 광풍이 불며 중장년의 시름과 시장의 위축을 달래고 있다. 하지만 청자나 관객이 필요한 음악계, 특히 공연계는 코로나로 인해 가장 큰 직격타를 맞았고 쉬이 회복되지 않는 처지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페라는 이어져야 한다는 소명으로, 라벨라오페라단은 27여년 만에 베르디의 ‘에르나니’를 무대에 올리기로 했다. ‘에르나니’ 주역을 맡은 이다미 소프라노를 만났다.


27년만에 무대 오르는 ‘에르나니’… 베르디 마니아들에겐 큰 선물


이다미 소프라노는 오는 11월 28일, 29일 양일간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오페라 ‘에르나니’의 여주인공, 엘비라 역할을 맡았다. ‘에르나니’는 오페라의 아버지라 불리는 베르디의 다섯 번째 작품으로, 빅토르 위고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 이다미 소프라노가 맡은 엘비라는, 남자 주인공 ‘에르나니’와 귀족 ‘실바’, 국왕 ‘카를로’의 사랑을 받는 역할로 비극적인 운명에 휩싸이게 된다.


“저는 늘 오페라에서 남자에게 배신 당하는 역할을 많이 했어요.(웃음) 그런데 처음으로 3명의 남자에게 사랑을 받는 역할을 맡았죠. 하지만 역시 비극적인 결말을 맞아요. 셋 중 제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남자는 결국 목숨을 끊고 말죠. 권력과, 돈, 사랑을 가진 남자들 가운데서 소용돌이처럼 휘말리게 되는 격정적인 역할이에요. 비극적인 인물들로 인해 감정이 들끓는 노래를 들을 수 있을 거예요.”


고전적인 비극의 정수를 담은 ‘에르나니’는 특히 베르디 마니아라면 더욱 반가워할 만한 공연이다. ‘에르나니’는 많이 연주되지 않은 곡이기 때문. 이번 공연은 국내에서 약 27년 만에 다시 무대에 오르게 됐다. 근 30년 만에 공연되는 데는 재미있는 내용, 감정을 요동치게 하는 노래로 인해 관객들에게는 큰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작품이나, 만들기는 어려운 작품이기 때문이라는 것이 이다미 소프라노의 생각이다.


“음악적인 면에서 어려움이 많은 작품이에요. 후기 베르디가 아니라 벨칸토가 많이 섞여 있어 노래하기 어렵기도 한데, 거기다 베르디만의 개성을 표현해야 해서 상당히 힘들어요. 많이 연주되지 못한 이유가 이거구나, 싶기도 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소화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관객 분들은 편하고 재미있게 보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베르디를 좋아하는 분들은 보기 어려운 희소성 있는 작품이니 더 좋아하실 거예요. 베르디의 ‘리골레토’나 ‘라 트라비아타’ 같은 작품은 한 해에 몇 번이고 연주되지만 ‘에르나니’는 그렇지 않거든요.”




피아노 포기한 음악소녀, 노래를 만나다


이다미 소프라노는 어린 시절 항상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나미의 빙글빙글이 텔레비전에 나오면 춤추며 따라 부르기 바빴다. 심지어 장래희망으로 삼은 피아노를 치면서 까지도 노래를 불러댔다.


“제가 성악을 하게 된 계기는 사실 피아노 때문이었어요. 피아니스트를 꿈꿨는데 손가락 한마디가 짧은 단지증이었던 거예요. 그래서 중학교 때 피아노를 포기하고 많은 방황을 했죠. 그때 어머니가 길을 잡아주기 위해서 노래를 해보자고 권유하셨어요. 제가 노래하는 걸 좋아하기도 했으니까요. 그때 어머니의 조언으로 인해 시작하게 된 노래를 현재까지 하고 있다고 볼 수 있죠.”


그렇게 만난 성악은 이다미 소프라노에게 평생을 고민하게 하고, 설레게 하는 또 다른 정체성이 됐다. 성악이라는 장르는 가창과 연기를 모두 해내야 하는 매우 고난도의 기술과 재능이 필요한 장르이기도 하다. 끝없는 연습과 관리, 깨우침이 필요한 데다 태생적으로 클래식과 멀기 때문에 성악가로서 끊임 없는 공부가 필요하다.


“제가 소프라노로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은 바로 테크닉입니다. 테크닉적으로 노래를 완전히 내 몸이 흡수하지 않으면 연기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요. 기술이 먼저, 기본이 준비되어야 하는 셈이죠. 어떤 상황에서도 이 노래를 최상의 것으로 만들어낼 수 있을 때 감성도 이입할 수 있고 연기도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때문에 기술을 먼저 갖추어놓고 그 다음에 연기로 들어갑니다.”


이다미 소프라노는 계원예고-이화여대 성악과를 졸업하고 이후에 이탈리아 밀라노, 프랑스에서 숙련했다. 밀라노 베르디국립음악원에서는 오페라과정을 만점으로 졸업하기도 했고 다수의 콩쿨에서 수상한 이력도 있다. 오페라, 성악의 본고장에서 이처럼 한국인 소프라노가 눈에 띌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오페라과정 만점과 관련해서는 한 해에 한두 명 정도가 그런 점수를 받습니다. 많은 사례는 아닌데 운이 좋았죠.”

겸손하게 답했지만, 다수의 학생들과 경쟁 아닌 경쟁을 하는 관계에서 이다미 소프라노 역시 자신만의 무한한 노력이 있었다.


다양한 레파토리 경험 후 다시 ‘기본’으로


“제가 왜 테크닉을 1번으로 생각하는지에 대한 답으로 설명할 수 있겠군요. 이태리에서 공부할 때 우리나라 학생들은 국내에서 굉장히 많은 공부를 마치고 이미 완성이 된 상태에서 유학을 옵니다. 그런데 저는 대학교 다닐 때에 열심히 놀았죠(웃음). 완성되지 않은 채로 유학을 나갔어요. 그래서 따라잡는 데에 힘들었죠. 이미 기초가 갖추어진 상태에서 곡만 수련해서 나가면 되는 아이들과 달리 저는 기초가 안 되어 있으니 곡을 부르는데 힘든 점이 많았어요.”


그래서 이다미 소프라노는 음악과 함께 살기로 했다. 연습실에서 숙식을 하다시피 했고, 악보로만 채워져 있는 교내의 거대한 음악도서관에서 ‘오페라’라는 글씨가 써진 악보라면 무엇이든 꺼내 제본을 한 후 연습했다. 남들이 모르는 곡들이 많았다.


“덕분에 다른 사람들보다 레파토리가 많았던 건 사실이에요. 다른 이들이 안 하는 것을 위주로 해서 차별성을 주었고 학구적인 학생이라는 평가 역시 얻을 수 있었어요.”


하지만 깨달은 것은 결국, 오페라는 ‘기본’이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이다미 소프라노는 다양한 레파토리를 경험한 후 결국 다시 발성을 흔들어 엎어 기본부터 공부를 했다. 기본으로 시작해 확장하는 일반적인 루트가 아닌, 흔하지 않은 곡들 속에서 마음껏 뛰어 놀다 다시 기본으로 돌아온 공부의 경험 역시 이다미 소프라노를 성장하게 했다.


“이태리의 한 콩쿨에서 수상을 했을 때, 제 생각에는 상을 받을 정도는 아니었어요. 잘하는 사람이 너무 많았거든요. 그런데 저에 대한 평을 보니 ‘오페라 뿐만 아니라 뮤지컬에서도 잘 쓰일 수 있다’, ‘어느 누구보다 영리했다’ 등의 평가가 있더군요. 제가 겪은 그러한 공부의 경험 때문이지 않았을까 싶어요.”


자신만의 차별점을 구축하되 결국은 착실한 학생처럼 기본을 놓치지 않는 영리함이 바로 이다미 소프라노의 강점인 셈이다.


그러나 외국에서의 성악가 생활은 예상 못한 걸림돌로 인해 문제가 생겼다. 개인적인 이유였다. 바로 지독한 향수병이 찾아온 것이다. 2016년 이다미 소프라노는 한국으로 돌아와 귀국독창회를 열었다.


“깊은 우울감에 아무 것도 하지 못했고, 도저히 그곳에 있을 수 없었어요. 누군가 지나가다 이름만 불러도 눈물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살기가 힘들었고 외로웠어요. 이러다가 내가 죽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한국에 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한국행이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귀국독창회를 끝으로 자신의 커리어가 끝날 수도 있다는 두려움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다미 소프라노는 에르나니를 준비 중이니 그것은 잠시의 기우였던 셈이다.




열악한 한국 오페라 시스템..."힘든 점 많아"


“운이 좋게도 오페라를 계속 할 수 있었어요. 다만 한국에서의 오페라 역시 힘든 점이 많습니다. 국립, 시립, 예술의전당. 이러한 곳의 기획 공연이 아니면 너무나 열악한 것이 사실이에요. 외국에서는 오페라를 하면 그 극장 자체에서 한두 달을 연습합니다. 체제비 같은 것들도 지원이 되고요. 하지만 우리나라는 일반적으로 그 만큼의 연습을 할 수 없어요. 공연을 하는 무대에서 한두 번 정도 리허설을 하듯 연습을 마칩니다. 그런 다음 무대에 올라가 관객을 만나야 하는 것이죠. 극장에 적응할 시간도 부족한 채로요. 그게 가장 힘든 점이에요.”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관행이 바로 오페라의 시스템으로 이미 잡혀버렸다는 사실이다. 모두가 문제를 알지만 누구도 선뜻 나서서 뒤엎을 수 없는 상황. 이다미 소프라노는 개인의 입장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할 수밖에 없다. 오페라의 아름다움을 전하기 위해서.


“저는 오페라를 정말 좋아해요. 가곡도 아름답고 좋지만 오페라는 다른 사람의 삶을 살아볼 수 있는 게 너무 좋아요. 내면의 모든 것을 다 끌어내고, 남들이 보지 못하는 나의 모습을 만날 수 있죠. 추악하거나 미친 듯 기뻐하는 그런 모습을 다 끌어내도 부끄럽지 않은 장르가 바로 오페라예요. 내면을 다 끌어낼수록 더 좋은 작품이 된다는 것도 참 멋진 점이죠. 그렇게 오페라를 하면 할수록 제가 모르는 저의 모습도 나오게 된다는 게 짜릿하고요.”


공연계 강타한 코로나 쇼크… 이번 공연은 ‘사명감’


코로나 얘기가 나오자 이다미 소프라노의 얼굴에 순식간에 그늘이 드리워졌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공연계는 10개월간 큰 어려움을 겪었다. 당사자로서 느끼는 고통은 단순히 ‘일이 줄어든다’ 정도가 아니었다.


“경제적인 면은 당연하고, 무대에 서던 사람이 서지 않으니 놓게 되더군요. 노래를 포기해야 하나는 생각이 들었어요. 공연이 줄줄이 취소되던 초반에는 ‘노래가 하고 싶다. 해야 하는데’라는 갈망이 강했다면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서 ‘그냥 노래하지 말까, 귀찮다’라고까지 정신력이 약해지더군요.”


아울러 오페라를 올릴 수도, 이대로 하지 않을 수도 없는 단측의 고심과 고통도 매우 컸다. 최근에는 ‘띄어앉기’로 인해 아무리 만석이라 하더라도 종전의 절반의 수익을 거둘 수 밖에 없는 것 역시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벨라오페라단이 이번에 ‘에르나니’를 상연하는 것은 매우 큰 결심과 용기라는 설명이다.


“사립단체인 라벨라오페라단이 현재 이 상황에서 공연을 한다는 것은 단측의 사명감 때문일 겁니다. 이대로라면 오페라의 명맥이 끊길 수 있다는 위기감, 이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는 소명의식 때문에요. 수익적인 면을 생각한다면 결코 공연을 무대에 올릴 수 없었을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베르디의 ‘에르나니’를 봐야하는 이유는 확실하죠. 이 공연이 끝나면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알 수 없어요. 본 것만으로 자랑이, 추억이 될 수 있는 오페라가 바로 ‘에르나니’입니다.”




원문보기 : http://www.wsobi.com/news/articleView.html?idxno=108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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