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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시대 오페라의 도전...26년만에 국내 무대 '에르나니'


오페라 '에르나니' 공연 장면 [라벨라오페라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이용숙 객원기자 = 신성로마제국 황제로 선출된 스페인 국왕 돈 카를로가 대관을 위해 높은 곳으로 오르는 동안 그에게 쏟아진 대각선 조명과 장엄한 분위기는 객석의 탄성을 자아냈다.

라벨라오페라단(단장 이강호)의 '에르나니' 공연이 열린 29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을 찾은 관객들은 이번 프로덕션에 아낌없는 갈채를 보냈다.

1994년 서울시립오페라단(현재 서울시오페라단)의 국내 초연 이후 26년 만에 코로나 시대의 어려움을 뚫고 관객을 만난 '에르나니'는 높은 공연 수준을 보였다. 방역지침에 따라 1천906석 중 892석을 개방한 이번 공연의 객석점유율은 28~29일 양일 공연을 합산해 약 70%였다.


'무적함대' 펠리페 2세의 아버지이자 '스페인의 사도세자' 돈 카를로의 조부였던 국왕 카를로스 1세는 1519년에 신성로마제국 황제로 즉위해 카를 5세 또는 카를로 5세로 불렸다.


바로 그 시기 스페인 아라곤이 배경인 빅토르 위고의 '에르나니'는 1830년 코메디 프랑세즈에서 초연됐을 때부터 치열한 '낭만주의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화제작이었으며, 베르디가 1844년 베네치아 라 페니체 극장에서 오페라로 초연했을 때 자신의 '나부코'를 능가하는 대성공을 기록했던 작품이다.

이런 걸작이 그동안 자주 공연되지 못한 이유는 이탈리아 오페라의 흔한 삼각관계가 아닌 사각관계를 다뤄 인물 간의 갈등이 복잡할 뿐 아니라, 극이 남녀 주인공의 애정관계보다 '서약과 명예'에 대한 16세기 귀족 남성들의 집착에 더 집중하고 있어서였다. 그보다 더 큰 이유는 벨칸토 시대 고난도의 성악적 테크닉을 제대로 구현할 가수들을 구하기가 어려워서다.

이날 공연의 타이틀 롤을 맡은 테너 국윤종은 어떤 배역을 맡아도 최선을 보여주는 가수답게 낭만주의적 열정으로 자신을 스스로 파국에 이르게 하는 혁명적 인물을 설득력 있게 그려냈다.

1막 첫 등장의 아리아부터 죽음을 앞둔 중창에 이르기까지 국윤종은 특유의 미성으로 깊은 서정을 표현하면서도 강렬하고 힘찬 발성과 풍부한 성량으로 압도적인 감정의 폭발을 끌어냈다.

엘비라 역의 소프라노 조은혜는 세계적인 소프라노들도 힘겨워했던 엄청난 고난도의 기교와 연속적인 고음을 성공적으로 소화했다. 돈 카를로 역의 바리톤 최병혁은 전달력이 뛰어난 명징한 발성과 발음으로 귀를 사로잡았고, 젊은 권력자의 고뇌를 보여주는 악상의 섬세한 해석과 기품 있는 표현력도 돋보였다.

실바 공작 역의 베이스 이준석은 베르디 베이스의 역량을 제대로 발휘하며 노년의 안타까운 사랑과 냉정한 복수 사이를 오가는 인물을 깊이 있는 연기력으로 보여줬다. 조역으로 출연한 라벨라오페라스튜디오 단원 테너 김지민, 바리톤 고병준, 소프라노 김연수도 좋은 가창과 연기로 극을 뒷받침했다.


오페라 '에르나니' 공연 장면 [라벨라오페라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지휘자 양진모가 이끈 뉴서울필하모닉오케스트라는 서곡부터 서정성과 박진감을 오가는 연주를 들려줬다. 정확하게 핵심을 짚어내는 연주 속에서 오케스트라가 만들어내는 오묘한 색채감이 인상적이었다. 합창의 비중이 특히 큰 '에르나니'에서 노이오페라코러스는 복잡한 리듬의 합창곡들을 무난히 소화했고, 특히 '서약의 합창'으로 객석의 큰 호응을 얻었다.

연출가 이회수와 무대디자이너 신재희의 '에르나니' 무대는 각 막의 효과적인 무대 변환과 동선으로 시종 극의 긴장감을 유지했다.

특히 1막에서 에르나니와 산적단이 등장할 때 적절하게 사용된 계단 구조, 장면마다 방향을 바꾸며 극중의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를 상징한 그리스 조각상, 3막의 웅장한 샤를마뉴(카를로마뇨) 석조 무덤, 4막에 사용된 가장무도회 가면들의 연속 구조 등 매번 새로운 아이디어가 이어졌다.

시녀들이 강박적인 대열을 지어 합창하며 엘비라를 심리적으로 압박하는 장면, 조명에 따라 효과가 달라지는 무대의상의 소재도 주목할 만했다. 다만 '서약의 합창' 장면에서 다 함께 칼을 치켜드는 평범한 연기 등은 더 새로운 아이디어가 필요해 보인다.

민간오페라단이 이 어려운 작품을 제작해 성공적인 공연으로 이끌었다는 사실은 힘겨운 코로나 시대 공연 상황 속의 오페라계에 신선한 희망을 실어줬다.


원문보기 : https://www.yna.co.kr/view/AKR20201130098300005?input=1195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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