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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라노 조은혜 “한꺼번에 세남자 사랑 독차지…‘에르나니’는 인생 오페라”

11월 28~29일 공연…드라마틱과 콜로라투라의 매력 동시에 선사

오페라 '에르나니'에서 여주인공 엘비라 역을 맡은 소프라노 조은혜가 "드라마틱과 콜로라투라를 오가는 매력 보이스를 선사하겠다"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정소희 기자]

[아이뉴스24 민병무 기자] “에르나니·카를로·실바 등 한꺼번에 세 남자의 사랑을 독차지하니 복이 터졌죠. 코로나19 때문에 올해 공연은 올스톱이었는데 뒤늦게 호강하네요. 물론 걱정도 있습니다. 드라마틱과 콜로라투라를 동시에 선보여야하기 때문에 발성이 참 어려워요. 하지만 이렇게 멋진 배역을 맡았으니 행운이죠.”


소프라노 조은혜가 ‘인생 오페라’를 만난 기쁨을 드러내며 환하게 웃었다. 그는 오는 11월 28일(토)과 29일(일) 이틀간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무대에 오르는 주세페 베르디의 ‘에르나니(Ernani)’에서 여주인공 엘비라를 연기한다.


지난 4일 서울 서초동 라벨라오페라단 연습실에서 만난 그는 기대감과 함께 부담감도 드러냈다. ‘에르나니’는 대작이다. 사이즈가 워낙 커 외국에서도 감히 손을 대지 못하는 ‘희귀템’이다. 그나마 알려진 것도 몇 개의 프로덕션 밖에 없어 참고해야 할 작품도 많지 않다.


지난 1994년 국내 무대에 첫선을 보였지만 그 후 27년 동안 재공연하지 못했다. 세 남자가 한 여자를 두고 싸운다는 보기 드문 사각관계 설정, 남자들이 사랑보다는 명예와 약속에 광적으로 집착하는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 네 주인공 모두가 고난도의 노래를 소화해야 하는 난곡 탓에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이번에 라벨라오페라단의 프로덕션으로 새롭게 부활하는 만큼 관심이 뜨겁다.


소프라노 조은혜가 "한꺼번에 세남자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엘비라 역할을 맡았으니 기분은 좋지만 테크닉적으로 어려워 걱정도 된다"고 말하고 있다. [정소희 기자]

‘엘비라’ 조은혜는 첫 등장부터 강렬하다. 그가 사랑하는 사람은 산적의 우두머리 에르나니(테너 국윤종 분)다. 원래 아라곤의 영주였으나 반역죄로 추방당해 국왕 카를로(바리톤 최병혁)에게 대항하는 인물이다. 안타깝게도 귀족 실바(베이스 이준석 분)와 정략결혼을 해야 할 처지에 빠진 엘비라는 1막에서 ‘밤이 깊어가네...에르나니, 나를 데리고 도망쳐요(Surta e la notte...Ernani, Ernani involami)’를 부르며 나온다.


“이 작품에서 가장 유명한 곡입니다. ‘입시생곡’으로 불릴 만큼 자주 연주됩니다. 좋아하지 않는 사람과 원치 않는 웨딩마치를 울려야 할 처지니 얼마나 속상하겠어요. ‘어서 빨리 나를 데리고 멀리 멀리 떠나요’하고 간절히 노래하죠. 처음엔 느린 템포로 무거운 보이스 컬러를 보여줍니다. 그러면서 서서히 ‘어디 한번 내 목소리에 맞아 죽어봐라’ 할 정도로 폭풍 성량을 뽑아냅니다. 거기에 더해 끝으로 갈수록 빠르게 고음스킬까지 구사합니다. 등장하자마자 언터처블 아리아를 불러야하니 멘탈이 흔들려요.(웃음)”


조은혜는 ‘두꺼운 목소리’ ‘엄청난 성량’으로 대표되는 드라마틱 소프라노(Dramatic Soprano)다. 그런데 이 아리아의 후반부엔 고음의 끝판왕인 콜로라투라 소프라노(Coloratura Soprano)의 솜씨가 필요하다. 그에게 살짝 부족한 부분이다. 이런 이유로 공연을 3주 정도 앞두고 요즘 테크닉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 목표는 하나. 오케스트라의 소리를 뚫고 관객 가슴에 처절한 절규가 전달되는 것이다. 임팩트 있는 한방을 제대로 날리겠다는 각오다.


문득 조은혜의 속마음이 궁금했다. 드라마 전개상 일편단심 에르나니지만, 현실 세계로 들어와서는 과연 세 남자 가운데 누가 이상형일까.


“카를로죠. 권력 있고 돈도 있는 국왕이기 때문에 좋아하는 게 아니에요. 엘비라가 진정 사랑하는 사람이 에르나니라는 것을 알고 카를로가 취한 행동이 ‘심쿵’했어요. 끓어오르는 연정을 꾹꾹 누른 채 아무 조건 없이 에르나니에게 보내준 너그러움 마음에 감동했어요. 하지만 더 현실적으론 실바가 좋아요. 연습 끝나면 밥을 가장 많이 사주기 때문이죠.(웃음)”


10월부터 본격적으로 손발을 맞추고 있는데 팀워크가 대단하다. 구슬땀 연습 뒤에 깔깔깔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가끔 치맥타임을 가지기도 하는데 단합의 일등공신이다. 바로 곁에 절친이 있어 더 의지가 된다. 엘비라에 더블캐스팅 된 소프라노 이다미가 계원예고 동기동창이다.


조은혜는 “고등학교 때부터 친하게 지내고 있는 친구가 7명 있는데 그 중 다미를 포함해서 5명이 현역으로 뛰고 있다”라며 “여러 오페라·콘서트 필드에서 자주 만나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무척 좋다”고 말했다. 분발을 유도하는 귀중한 촉매역할도 한다.


그는 무대에 오르기 3시간 전부터는 아무 것도 먹지 않는 습관이 있다. 속이 텅 비어 있는 상태가 컨디션 조절에 용이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소리도 더 잘 나온다. 또 특이한 점은 워밍업 시간도 많이 걸린다. 1시간 정도 소리를 내야 예열이 된다.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오래 불러야 목이 풀린다.


조은혜는 대부분의 음악가들처럼 어린 시절부터 피아노를 쳤다. 노래도 곧잘 해 주위에서 차라리 성악을 해보면 어떻겠느냐고 권유했지만 귓등으로 흘렸다. 그는 “성악은 프로 연주가가 못되면 폭망할 것 같았지만, 피아노는 나중에 학원이라도 차리면 될 것 같았다”고 고백했다. 어린 나이인데도 돈벌이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생활감각이 뛰어났다며 웃었다.


성악으로의 터닝 포인트는 중학 3학년 때다. 교내외에서 열린 여러 대회에 참가해 입상하는 횟수가 잦다보니 ‘내가 정말 성악에 재능이 있나’하고 진지하고 고민했다. 다른 친구들보다 손도 작아 피아노 치는데 왠지 마이너스가 될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신체적 핸디캡이 언젠가는 약점으로 작용할 것 같았다. 그는 “결과적으로 성악으로 바꾸길 잘했다. 정말 노래하는 게 재미있고 행복하다”고 덧붙였다.


조은혜는 계원예고와 서울대 음대 성악과·서울대대학원 성악과를 졸업했다. 그리고 미국으로 건너가 존스홉킨스 대학교 피바디 음악원 오페라과 연주자 과정을 거쳐 일리노이 대학교 성악과 연주 및 문헌학 박사(DMA)를 취득했다. 그는 정통 엘리트 코스에서 한발 비껴났지만 ‘언더독(Underdog) 반란’을 꿈꾼다고 했다.


“미국에서 공부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벽이 존재했어요. 작은 체구에도 미국인보다 더 드라마틱한 색채와 큰 성량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라이트한 역할만 강요하는 편견이 너무 힘들었어요. 그 당시에는 제 고유의 컬러를 바꿔서 무대에 서는 것 보다는 ‘학문적 연구’로 후배들을 가르치는데 관심이 쏠리더라고요."


그는 크고 작은 무대에 서면서도 후배들의 가이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인제대 성악과 외래교수와 명지대 성악과 객원교수를 역임했고 현재 서울대 성악과 및 이화여대 성악과에 출강하며 후학 양성에 힘쓰고 있다.


오페라 '에르나니'에서 여주인공을 맡은 소프라노 조은혜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는 "코로나를 물리칠 정도로 감동의 공연을 선사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정소희 기자]

국내무대는 2016년 데뷔했다. 제7회 대한민국 오페라 페스티벌 신인 성악가 오디션에 발탁돼 ‘리날도’의 아르미다 역으로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 섰다. 2017년 제8회 대한민국 오페라페스티벌에서는 낙랑공주 역할로 ‘자명고’에 출연해 확실히 눈도장을 찍었다. 그리고 2018년 ‘돈 조반니’에서 돈나 엘비라를 연기했고, 2019년엔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에서 리사이틀을 열었다.


조은혜 역시 올해 코로나 때문에 개점휴업 상태였다. 변변한 공연 하나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나마 지난 8월 롯데콘서트홀에서 무관중 온라인 공연 ‘뮤직 킵스 고잉(Music Keeps Going)’에 선정돼 공연한 것이 유일한 위안이었다. 그는 이 무대에서 로베르트 슈만의 ‘여인의 사랑과 생애’와 아놀드 쇤베르크의 ‘카바레 송’을 통해 낭만주의 시대 성악의 진수를 보여줬다.


조은혜는 팬데믹 때문에 모든 일상이 멈추어 버린 요즘 ‘에르나니’를 선보이는 라벨라오페라단의 과감한 결단에 박수를 보낸다고 말했다. 지난해 도니제티 ‘마리아 스투아르다’의 국내 초연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호평을 받은 라벨라오페라단이 코로나 여파로 공연계가 어려운 상황에서도 1년 만에 다시 그랜드 오페라를 무대에 올리는 것은 분명 모험이다. 하지만 이럴 때 일수록 위로와 위안을 주는 문화적 힐링이 필요하다는 신념으로 ‘쇼 머스트 고 온(Show must go on)’ 결정을 내린 것에 작은 힘이라도 보탤 생각을 하니 뿌듯하다고 설명했다.


“제 특기인 소리를 쭉쭉 뽑아내 지긋지긋한 코로나를 물리치는 무대를 선사할 겁니다. 그리고 지친 심신에 감동을 한아름 채워 주겠습니다. 이렇게 어려운 시기에도 극장을 찾아 주시는 팬들에게 1000% 노래 서비스로 보답하겠습니다. 제가 인생 오페라를 만난 것처럼 여러분도 인생 오페라를 보시게 될겁니다.”


한편 ‘에르나니’는 다양한 오페라 레퍼토리를 섭렵해 탁월한 음악적 해석을 제시하는 오페라 전문 지휘자 양진모가 지휘를 맡는다. 또한 섬세하고 감각적인 연출로 정평이 나있는 연출가 이회수가 세 남자와 한 여자의 심리적 갈등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뉴서울필하닉오케스트라와 노이오페라코러스도 함께 한다.


조은혜, 이다미, 국윤종, 최병혁, 이준석 외에도 엘비라의 시녀 조반나 역에 소프라노 김연수, 돈 카를로의 무관 돈 리카르도 역에 테너 김지민, 실바의 무관 야고 역에 바리톤 고병준 등이 출연한다.


티켓은 3만~18만원이며, 예술의전당 홈페이지 및 인터파크에서 예매 가능하다.


원문보기 : http://www.inews24.com/view/1315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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